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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오브 체인지

by 행복피라미 2023. 4. 11.

햇살이 방안가득 차고, 침대에 누운 여자는 얼굴을 지푸리며 잠이 깬다.

속이 메스꺼워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 여자는 숙취의 고통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침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반라의 그녀는 이 넓고 하얀 방처럼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길고 매끈한 하얀 다리와 가는 팔.

군살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마르지만 탄력있는 몸매. 

찰랑거리는 긴 흑발 사이로 아름다운 얼굴이 얼핏 비친다.

 

그러나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여자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주저앉아  냉장고로 기어간다. 

급히 냉장고를 열었지만 그 안에는 술병과 물밖에 없다.

요리의 흔적은 1도 없는 주방에 해장을 할만한 거는 없어 보인다. 여자는 갈증을 채우려 물을 그대로 입에 쏟아 넣다가 헛구역질을 한다. 물에서 술 냄새가 나는걸 보니, 더 마셨다가는 틀림없이 올릴거 같았다.

 

" 아.. 속쓰려.. 미치겠네 "

 

여자는 이런 숙취 처음이라 생각하며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찬장에 다행히 먹을 만한 빵이 있었다. 두어번 냄새를 쓱쓱 맞아보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봉투를 찢어 우걱우걱 빵을 먹는다. 

그렇게 속옷만 입은 채로 한참을 앉아서 빵을 뜯어먹고 있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난다.

 

삐삐삐삐삐삐 ~ 또로록

 

잠시후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캐쥬얼한 양복차림의 키 큰 남자가 들어오다가 여자를 보고 눈이 똥그래졌다.

 

" 뭐야! 민다희 미쳤어?! 오늘 광고 있는거 몰라? "

 

여자는 빵을 입에 가득문채 어리버리한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그 표정은 마치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 잡더니 화장실로 끌고 간다.

 

" 아..아.. 아야. 아파요 "

" 뭐? 아파요? 니가 아직 술이 덜 깼구나 "

 

남자는 여자를 변기앞에 거칠게 앉히더니 머리채를 손으로 휘감았다.

 

" 어서 토해. 뭐해? "

" 네? "

" 미쳤어 정말. 그래도 체중관리는 잘 하는 애가 왜그래! "

 

남자의 손등이 여자의 등을 몇번 내리치자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음식물이 넘어 왔다.

박자를 맞춰 남자가 몇번 더 치니 아까 먹은 빵들이 다 뿜어져 나왔다.

 

" 아. 술냄새! 올린거에 술냄새가 이만큼 나면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술좀 끊자 제발! "

 

여자는 아직 변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토를 한다는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등 몇번 두드린다고 되는 일이었나?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남자가 샤워기로 여자의 머리에 물을 쏟아 붓는다.

 

" 앗.  차가워.. "

" 참아.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래. "

 

남자는 와이셔츠의 양쪽 팔을 걷어 붙이더니 변기 앞에 앉은 여자의 머리부터 감겨준다. 여자는 술기운에 아직 노곤한지 차갑던 물이 따뜻하게 변하자  변기 뚜겅위에 엎어져 잠이 든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세심한 손길로 머리샴푸를 해주고 몸에 거품칠을 대충한뒤 다뜻한 물을 뿌려 거품을 씻겨주고 커다란 타올로 덮어주었다. 여자는 잠시 따뜻한 욕실에서 잠이 들었다.

 

 

남자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 여빈아. 여기좀 올라와라. 이 년 목욕하다 잠들었다 "

 

 

*       *       *      *      *      *

 

여자가 다시 눈을 떴을때는 샵의 의자 위였다.

 

" 다희씨. 이제 눈화장 해야 하니까 눈좀 떠보세요! "

 

메이컵 아티스트가 재촉하는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 우리가 다희씨 눈을 까 뒤집고 메이컵 하는것도 한계가 있어. 이제는 다희씨가 눈을 떠야 되! "

" 언니..! 눈좀 떠봐요. 이러다 진짜 큰일나요 ㅜㅜ "

 

여빈이 옆에서 울것 같은 표정으로 발을 동동 거리고 있다. 그 때 성큼 성큼 제실장이 걸어왔다.

 

" 선생님, 죄송해요. "

 

제실장은 메이컵 선생님에게 짧은 목례뒤 다희의 볼을 큰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짝!

 

샵의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는 싸대기 소리에 쇼파서 졸던 고양이가 번쩍 뛰어올랐다.

옆으로 꺽여진 다희의 목과 빨간 볼.

잠시 아무도 숨도 못쉬는 정적을 깨고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 아프잖아.... "

 

그제서야 눈을 뜬 다희를 붙잡고 메이컵이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메이컵 오버를 끝낸뒤 쇼파에 널부러진 다희에게 숙취 해소제를 털어넣어 주던 제 실장이 말했다.

 

" 여빈씨. 차 시동 걸어놔. 늦지 않으려면 지금 출발해야해 "

 

제실장은 다희를 들쳐 업었다. 그 모습이 제법 익숙해 보여 샵의 직원들이 저희들끼리 쑥덕거렸다.

 

" 어머~ 제실장님 키랑 덩치나 되니까 다희씨를 업지. 다희씨 긴다리가 달랑 들리는것좀 봐. "

" 그죠 선생님? 연예인은 제실장님이 해야 될거 같은데. 메니져나 하고 있기엔 너무 아깝다~"

 

그런 다희야 제실장을 보는 샵의 원장은 마음이 복잡했다.

 

" 민다희. 오래 못가겠는데..."

 

연예계 바닥에 30년째 스쳐가는 연예인들을 보던 원장의 안목에 다희는 이제 연예인 생명의 끝자락에 다와 가는것이 보였다. 새삼 처음 다희가 신출내기로 아무것도 아닐때 샵에 와서 인사를 하던 풋풋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원장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 다들 입들 조심하는거 알지? 계약서 내용 기억해 "

 

 

*          *            *           *           *

 

끙차!

 

제실장이 다희를 차 뒷자석에 내려놓았다. 말랐어도 기럭지가 길다보니 업는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 여빈씨. 출발해. "

" 네! "

 

차는 급히 출발했다.

 

" 이거 살쪘어. 1킬로그램 늘었어. "

" 제실장님은 보기만 해도 아십니까? "

" 아니, 아까 업었잖아 "

" 아...! "

 

여빈은 탄식이 절로 나온다.

 

" 역시 제실장님이십니다. 그 예민한 감각 저도 배울게요! "

 

제실장이 걱정반 분노반의 표정으로 다희를 내려다 보고 있을 때, 다희의 눈이 살짝 떠졌다.

눈알을 보니 아까 먹인 숙취해소제가 이제 듣나보다.

 

" 정신 차렸어? "

 

다희가 제실장을 한참 뚫어지게 쳐다본다. 제 아무리 제실장이어도 다희의 오랜 눈맞춤은 사람을 조금 민망하게 만든다.

 

" 그런데... 누구시죠? "

 

다희의 한 마디가 차안의 두사람의 가승을 철렁 내려앉혔다.

 

" 뭐?! 민다희 지금 사람 놀리는거지? "

"  ...네?  민다희라뇨? 저는 담진데요 "

 

제시장은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여빈아. 이거 뭐니? 일. 이년이 지금 사람을 놀리고 있다. 이. 이년이 지금 숙취로 맛이 갔다 . 뭔거 같애? "

" 음... 어렵습니다. 제실장님. 아마 일번 아닐까요? "

" 그래. 일번이든 이번이든 중요한건 지금 시간이 다 되간다는거야. 너 뭐가 됬든간에 이번엔 사고 치지 말고 촬영 마무리 잘해. 저번에 니가 다 찍어놓은거 먹는 장면 촬영만 다시 하는거니까. 가서 니가 좋아하는 거 쳐먹기나 하라고 "

 

다희의 턱을 한손으로 움켜쥐며 분노를 뿜어내는 제실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여자는 그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모르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을거 같은 분위기였다.

 

세트장에 들어서니 여러사람과 인사를 해야했다. 다희는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인사를 했다. 

 

" 오~민 다희씨. 오늘도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저번 촬영 다 좋았는데, 윗분들이 식사장면만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찍자고 해서. 오늘 좀 수고 해줘요 "

 

" ... 네 "

 

" 저번에 하루종일 고생했는데 또 찍으려니 다희씨도 맘이 안좋겠지만, 어쩌겠나 윗분들 맘에 들게 해야지 "

 

" 다희씨. 이번에는 다이어트라고 깨작 먹기 없어요. 그렇게 먹으면 누가 사먹고 싶어지겠어! "

 

옆에 서 있는 회사 직원이 윗분들 의견을 대신 전달이라도 하려는 듯 딱딱하게 말했다. 다희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기가 죽어가고 있었다.

 

" 그래. 다희씨. 이번에는 시원 하게 퍽퍽 잘 먹어줘요. 거 왜 일하는 배우 기 죽이고 그래요. 배우 기가 죽으면 촬영이 되나"

 

감독은 괜히 회사직원에게 타박을 하며 다희를 촬영장으로 밀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매우 익숙한 냄새가 어디서부터 난다 했더니, 촬영 세트 테이블 위로 갓 끓인 라면이 올라왔다.

 

" 라면이다..... "

 

아.... 이 얼마나 먹고 싶던 라면인가. 원래 숙취후 해장엔 라면이 최고지. 라면 두봉에 콩나물 한줌넣고 달걀 하나 올려서 뚜껑덮고 4분 푹 끓이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강제 상승인데. 

 

" 그래요. 다희씨가 제일 싫어한다는 라면인데, 그래도 어쩌겠어. 오늘은 다희씨 연기인생 걸고 맛나게 먹는 연기좀 해줘요 "

 

다희는 테이블에 앉아 젓가락을 들어 뽀얀 김이 나는 라면을 크게 한젓갈 떠올렸다. 잠시 찬 공기에 면이 닿도록 김을 날리기 위해 젓가락을 세번 좌우로 흔들었다. 그 흔들림에 하얀 김은 부서져서 사라진다. 다희가 한입에 면을 넣고 쭉 빨아들인다. 기가 막힌 면치기였다. 국물이 양옆으로 튀지도 않고 깔끔히 빨려들어가는 면,

몇번 씹다가 뜨꺼운 김을 한번 날리려 하늘은 보고 숨을 입으로 뱉는다. 그렇게 다희는 홀릭이 된듯 네 젓갈만에 라면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 장면을 보던 제실장과 여빈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촬영하던 모든 스텝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 와~~~!!!! 다희씨~! 그렇게 하는거야. 와~~! 진짜 감탄밖에 안나오네 "

" 진짜 다희씨 프로다!  프로는 프로야! "

 

도끼눈을 뜨고 바라 보았던 회사 직원도 입을 쩍 벌렸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왔다. 

 

" 내가 보았던 여 배우중에서 제일 맛있게 먹는거 같아 "

 

다음 라면이 준비되는 동안 감독님의 칭찬세례가 이어지자, 다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꿈속인거 같긴 한데 라면은 너무 맛있고 누군가가 나에게 잘먹는다고 칭찬을 해준다. 잘먹는다고 칭찬하는건 우리 엄마 아빠 밖에 없었는데, 뭔가 되게 기쁘다. 

 

곧 다음 라면이 준비 되었다. 

라면의 빨간 국물을 내려다 보며 다희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또 맛나게 한젓가락을 후르륵 마셨다. 그리고는 숙취후 먹는 이 환상적인 라면맛과 받아보지 못한 환호에 잠시 울컥해서 눈물이 나왔다.

 

" 어? "

" 컷! 다희씨 왜 울어? "

" 잠시만요. 우리언니 화장좀 고치고 가실게요~"

여빈이 튀어나가 다희의 얼굴을 눈물이 흐르지 못하게 뒤로 젖혔다 

 

그 때 다희가 말했다.

" 이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요. 눈물이 나네요. "

 

촬영감독은 다희의 말을 듣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그 말을 하던 다희의 얼굴이 표정이 너무 진심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맛있어서 감동을 받은게 분명했다. 

 

" 연출! 여기 현장 촬영 카메라는 돌아가던거 있지? "

" 네, 있을겁니다.  "

" 방금 장면 어서 가져 오라그래 "

" 네.. 왜요? "

" 쓸수 있을거 같아. 그거. 이거 대박이야. 어서 안가져오고 뭐해? "

 

현장 촬영용 카메라를 확인해보니, 약간 흔들리는 화면에 진짜 라면먹다 우는 여배우가 찍혀있었다. 아름답고도 아련한 표정의 그녀가 맛있게 먹다가 감동적이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잘 잡혀있었다.

 

" 바로 이거야. 광고 마지막에 이장면 어때요? 관계자님? "

감독이 회사 직원을 보고 씩 웃자 회사 직원은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            *            *            *           *           *

 

" 담지야. 엄마가 밥먹으래! "

 

방문을 두드리던 아버지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방문을 열고 말했다.

 

" 담지야. 일어나.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자더라도 밥은 먹고자. 그래야 위가 안상하지. 아빠가 먼저 먹고 있을테니까 얼른 나와라 "

 

아버지는 담지를 흔들다가 지쳤는지 나가셨다.

담지는 슬쩍 눈을 떴다. 암막커튼 사이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데 자신은 침대에 뻗어 누워있었다. 

 

끙차.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숙취가 느껴지긴 했는데 왠일인지 크게 나쁘진 않았다. 아침마다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두통도 없이 상쾌하다. 

 

" 어제 안주를 먹어서 그러나 "

 

목이말라 냉장고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몸이 너무 무거워 도로 앉았다. 담지는 그제서야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 엄마야. 뭐야! "

 

울룩불룩 뱃살과 코끼리 다리.

 

" 내가 어제 안주를 암만 먹었다 해도 이럴리 없어 "

 

담지는 얼른 방 구석에 돌려져 있는 전신 거울을 찾아 몸을 비춰보았다.

 

" 악~~~~~~~~~~~~~~~~~~~~~~~~~~~~~~~~~~~~~~~~~~!!!!!!! "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담지는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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